골프뉴스/칼럼 [안성찬의 골프견문록&37]연덕춘과 일본오픈, 그리고 KPGA 창설 [골프경제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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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찬의 골프견문록&37]연덕춘과 일본오픈, 그리고 KPGA 창설 [골프경제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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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연덕춘. 사진=KPGA)

한국 남자 프로골퍼 1호 故 연덕춘(延德春1916~2004년)이 한국이름을 되찾았다. 듣기만 해도 반가운 소식이다.
늦은 감은 있지만  고문(이 한국 이름을 되찾았다는데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연덕춘은 한국인 최초로 1941년 일본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당시 우승은 한국인 최초의 ‘일본오픈’ 우승이자 한국 선수가 해외 무대에서 거둔 첫 우승을 이룬 쾌거였다.

연덕춘의 일본오픈 우승은 故 손기정 옹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것과 함께 일제 강점기 하 한국인의 위상을 크게 알린 역사적 사건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본 골프사에서 ‘연덕춘’이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1941년 일본오픈 우승자는 일본인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잠시 되돌려 보자.

연덕춘은 일제강점기였던 1916년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뚝섬에서 2남3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농사를 짓던 부친 연군학 씨는 뚝섬에 홍수가 나자 화양리로 이사를 했다.   

연덕춘은 1932년 15살때 경성골프클럽의 군자리코스를 찾아가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캐디마스터인 조카 김종석 씨를 만났고, 캐디마스터실 보조역 제안을 받고 일을 시작했다. 

골프장에 취직한 연덕춘은 골프장 일본 프로에게서 1개의 골프채를 선물받고 클럽을 휘두르며 프로골퍼의 꿈을 키웠다.

골프장 헤드프로인 일본 프로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골프장은 한국인 프로를 쓰자고 했다. 대상은 연덕춘과 김종석, 그리고 배덕산(KPGA 창립멤버인 배용산의 형)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연덕춘의 운명이 바뀐다. 골프장 회원들이 연덕춘의 자질을 알아보고 일본으로 골프유학을 보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1934년 18살 나이에 일본으로 떠났다. 연덕춘은 일본에서 1933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했던 나카무라의 골프지도를 받고 본격적인 프로수업에 들어갔다. 1935년 일본 관동골프연맹으로부터 프로자격을 받은 연덕춘은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다.

일본에서 프로자격을 얻은 연덕춘은 1936년 귀국해 경성CC 전속 프로로 근문했다. 회원들의 레슨도 했다. 1937년 일본오픈에 출전해 8위에 올랐고, 이듬해 공동 5위를 기록했다. 1938년 JPGA 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했다. 1941년 5월 73명(프로 49명, 아마 24명)이 출전한 일본오픈에서 4라운드 합계 290타를 쳐 우승했다. 26세였고, 클럽을 잡은 뒤 10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1935년 JPGA 선수권에서는 준우승했다. 

이후 연덕춘은 클럽을 놓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일본의 패전으로 광복을 맞았지만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는 폐허가 됐다. 골프장은 꿈도 못꿨다. 그러다가 클럽을 다시 잡은 것은 군자리 코스가 복구된 1954년이었다. 

연덕춘은 1958년 열린 제1회 한국오픈에서는 미국선수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제1회 KPGA 선수권에서 우승타이틀을 손에 쥐며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연덕춘을 주축으로 1963년 친목단체 성격의 프로골프협회가 결성됐고, 19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가 창립됐다. 초대회장은 남서울CC 명예회장 허정구 회장이 맡았다. 연덕춘은 일본오픈 우승자 한장상을 비롯해 홍덕산, 이일안, 강영일, 조태운 등 후배들을 양성했다. 제2대 협회장에 취임한 연덕춘은 코스설계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뉴서울CC 북코스가 연덕춘이 설계한 코스다. 2004년 88세로 타계했다. 한국의 낳은 골프영웅 빈소에는 일부 후배들만 찾아 연덕춘은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하고 쓸쓸하게 하늘나라를 향했다.

■18세때 일본으로 골프유학

KPGA는 지난해 10월부터 대한골프협회(KGA)와 함께 일본골프협회(JGA)와 연덕춘 고문의 국적과 이름 수정에 대한 긴밀한 협의를 이어왔다. 

협회의 이런 노력으로 지난 4월 일본골프협회는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의 표기를 연덕춘, 국적을 한국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84년만에 ‘노부하라 도쿠하루(延原 德春)’가 ‘연덕춘’으로 돌아온 것이다.

연덕춘의 일본오픈 우승 트로피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유실됐다. 이에 KPGA는 일본오픈 트로피를 복원하는 작업도 진행했고, 복원을 완료했다.

일본의 일본골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본오픈’ 트로피도 일본골프협회에서 복원한 것이다.
12일 서울 중구 소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김원섭 KPGA 회장, 강형모 KGA 회장, 야마나카 히로시 일본골프협회(JGA) 최고 운영 책임자, 문홍식 KPGA 고문, 故연덕춘 고문의 이손 문성욱 KPGA 프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1호 프로골프 선수 故 연덕춘, 역사와 전설을 복원하다'라는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故 연덕춘 고문의 국적과 이름이 변경된 과정 소개, 새롭게 복원된 ‘일본오픈’ 트로피 공개 및 복원 과정, 향후 독립기념관 기증 안내에 대한 설명이 이뤄졌다. 

■일본오픈 우승트로피 복원

류진 풍산그룹 화장, 문홍식 KPGA 고문, 김원섭 KPGA 회장, 야마나카 히로시 JGA 최운운영책임자, 강형모 KGA 회장, 문성욱 KPGA프로(왼쪽부터). 사진=KPGA

김원섭 KPGA 회장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회장님, 이케타니 마사나리 일본골프협회 회장님과 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며 “앞으로도 KPGA는 올바른 한국골프 역사를 찾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강형모 KGA 회장은 "연덕춘 선수의 국적과 이름이 바로잡힌 것은 한국 골프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일"이라며 "이를 통해 한일 양국 간의 상호 이해와 신뢰를 넓히는 의미 있는 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야마나카 히로시 JGA 최고 운영 책임자는 “KPGA와 KGA의 요청을 받고 JGA 내부적으로 심도 있게 논의했고 올해부터 모든 공식 기록에 한국인 ‘연덕춘’으로 표기하기로 했다. 연덕춘 고문 본인도 천국에서 기뻐할 것”이라며 “또한 당시 ‘일본오픈’ 트로피가 복제돼 한국에서 이렇게 전시된다는 것은 JGA로서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다. 멋지게 재현해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히로시는 “202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이러한 해에 이번 기념식을 치르게 돼 더욱 큰 의미가 있다”며 “연덕춘 고문 외 한장상 고문과 김경태, 배상문 선수는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적이 있고 현재도 한국의 남녀프로골프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한일간의 스포츠 교류의 초석을 다져 주신 분이 바로 연덕춘, 한장상 고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한국과 일본이 함께 발전하며 좋은 라이벌, 친구로서 세계무대에서 빛나길 기대한다. KPGA와 KGA 그리고 한국 골프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기원한다”고 설명했다. 
제2대 KPGA 회장도 역임했으며 KPGA는 연덕춘 고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저타수상을 ‘덕춘상’으로 명명해 1980년부터 KPGA 투어 선수를 대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출처 : 골프경제신문(http://www.golf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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